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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2. 30.

Back on my feet

Final Fantasy XIV 기반 OC(세다 토 페니파르) 조각글

공미포 6169자 / 공백포함 8439자

“ 세다 씨, 잘 들으세요. “

자신보다 훨씬 자그마한 여성이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녀의 표정을 보아 예측하건대 아주 많은 생각과 큰 결심을 하고 본인에게 직접 찾아온 것이리라.

“ 세다 씨의 눈 상태를 보니까… 치료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그녀는 드디어 하고 싶었던 말을 처음으로 뱉은 갓난아이처럼 열심히 그에게 말했다. 그녀는 그가 최대한 이해해 주기를 바라면서 쉽게 풀어 말하고 있는 듯했으나 미코테 족의 잘난 청력에 반해 내용은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듯한 눈치였다.

당연하지. 그 말이 현실이 아닌 거처럼 느껴졌을 테니까. 아무렇지 않은 척은 잘도 하고 있었지만, 얼굴의 반 이상이 하얀빛의 흉한 자국이 남아 있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었다.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 가면을 쓰지 않고 남들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가 없었다.

“ …… 괜찮으시겠어요? “

그제야 복슬복슬한 귀가 움찔거렸다. 아, 맞다. 대답.

“ 어떻게? “

“ … 하나도 안 들으셨죠? “

그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안 듣고 있었던 것에 대한 사과도 없었다. 그저 작은 그녀를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사실, 사과하는 법을 아예 모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 그러니까…. “

그런 그의 반응이 익숙한 건지, 타인에게 늘 상냥했던 그녀는 그의 눈치를 잠깐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 이번에도 듣지 않을 까봐 아주아주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제 막 글을 떼기 시작한 아이에게 설명하듯이 천천히, 아주 심플하게─ 결론만 말하자면 하얗게 바래버린 오른쪽 얼굴을 왼쪽의 얼굴처럼 되돌릴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다만 시간이 걸리는 치료이며 꾸준하게 받아야 하고 그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한다. 그는 그런 게 이제 와서 중요하냐는 듯, 답지 않게 의욕이 넘치는 대답을 했다.

“ 어디 한 번 해보자고. “

그녀가 데려온 곳은 그리다니아 구시가지 어느 한 구석에 있는 환술사 길드였다. 그녀는 높아 보이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 같더니 이내 그를 자리에 눕혔다. 이제부터인가 보다. 자연스럽게 눈을 감았다 뜬 곳에는 … 날개 달린 돼지 같은 것이 있었다. 돼지 …… 돼지가 있었다. 잠깐. 돼지?

“ 이 돼지새끼는 뭐야? “

“ 돼지라뇨!! “

“ ……. “

“ 포크시에요! 포크시!! ”

하지만 아무리 봐도 …

“ …돼지새끼. ”

그녀는 이내 볼을 부풀려 뾰로통한 표정으로 그럼 적어도 새끼돼지로 바꾸어 달라고 했다. 그는 마지못해 새끼돼지로 정정했다. 아무튼, 그 돼지가 그녀와 함께 빛을 내더니 울렁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세다는 자신이 받는 치료에 대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상관없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그는 헛구역질을 하더니 바닥에 쏟아내기 시작했다. 눈 앞이 계속해서 돌았고 이명이 멈출 줄 모르는 듯 했다. 이런 건 사전에 듣지 못했던 것 같다. 무엇인지 모를 ‘그것’을 한창 토해내고 나니 마치 먼 곳에서 들려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 …… 아요?! 세다씨, 괜찮아요? 정신이 들어요? ”

요란한 기침 소리가 난다. 이게 자신에게서 나오는 소리인 걸 알아채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는 흐릿한 시야로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며 간신히 대답 같은 소리를 뱉었다.

“ …… 어어. ”

그녀는 세다에게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자신의 실수라던가, 어디 더 아픈 곳은 없냐고 물어본다던가… 딱히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그는 부담스러울 만큼 자신을 쳐다보는 눈망울만으로도 그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그는 솔직히 진짜 더럽게 아팠지만, 이렇게까지 사과하는 녀석에게 따지고 들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귀찮았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런 진심 어린 사과의 말을 들은 건지 아닌 건지 됐어. 라는 한마디만 하고는 툴툴 털고 일어났다. 그녀는 다음번에는 좀 더 잘 해보겠다며 다시 기회를 달라고 했다. 이런 걸 또 해야 한다니. 탐탁치 않았지만, 얻을 수 있는 것이 더 많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죽어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으나 결국에 다시 이 빌어먹을 숲의 도시로 돌아오게 될 것까지 전부.

“ 어느 정도 안정을 취한 후에 다시 해봐요. ” 그녀가 사과의 끝에 한 말이었다. 한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그녀는 다시 세다에게 찾아왔다. 한 번 더 해보자고. 당연하게도 결과는 실패였다. 아니… 피부의 회복 정도로만 본다면 성공과 다름없었지만, 이번에도 저번과 마찬가지로 바닥에 하얀 것을 토해내고 끝났다. 솔직히 말해 무엇인지도 모를 그것을 토해내는 기분은 상당히 구렸다. 그렇지만 해야 했다. 누구보다 나 자신이 원한 일이었고, 아무런 관련 없는 이 녀석이 고작 나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주는데 이제 와서 물러나는 것도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몸은 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따라주는 법이 없었다. 이 ‘치료’라는 것의 주기가 일주일에서 5일, 3일로 줄어들 때쯤에 고름처럼 차오르던 고통이 결국 터져버렸다. 치료 한 달째의 일이었다.

아, 진짜 이거 정말 아프다.

미트라는 내 에테르 상태가 특이하다고 했지.

그래서 아픈거라고 했어.

쿨럭쿨럭. 가벼운 기침이 나온다.

다른 사람이면 괜찮다고 했는데.

나만 이렇다고? 더러운 세상.

그러고보니 그 때 그 이상한 녀석도….

기침이 빈도가 잦아지며 토기가 올라온다. 세다는 무의식적으로 머리에서 고통을 밀어내고 쓸데없는 생각으로 가득 채운다. 자신이 의식을 잃어가는 것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생각의 파도를 불러온다. 통각, 시각… 시간 감각도 무너져 내린다. 속된 말로는 정신을 잃고 기절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 한없이 강인해 보이기만 했던 미코테 족이 자신보다 훨씬 작은 체구의 라라펠 족에게 기대어 의지하는 꼴이 되다니 우습지 않은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얼굴을 보며 눈을 떴다. 아, 이번엔 기절까지 한건가. 최악이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 무시했던 고통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윽,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그 소리에 정신이 든 나를 보아서인지, 얼굴에 화색이 들었다.

“ 아파……. ”

최악이다. 진짜 최악이다. 물밀듯이 덮쳐오는 고통을 참을 수 없어 하지 않을 법한 말이 튀어나왔다. 눈에서도 원하지 않던 액체가 흘렀다. 이런 약해 빠진 모습을 보이는 건 크피르 말고는 없었는데. 더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손으로 바로 닦아냈다. 결국엔 그게 더 우스운 꼴이 됐지만.

“ 많이 아파요? ”

그녀의 손이 자신보다 덩치가 훨씬 큰 몸만 큰 소년의 머리에 닿았다. 마치 어린아이를 대하듯이 머리카락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쓸어내렸다. 그녀의 상냥함이 손을 타고 전신에 타고 흐르는 것 같았다. 어째서인지 그저 참으려던 것이 더 세차게 흘렀다.

“ 그래도 많이 힘냈어요. 잘 버텼어요. ”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뚝뚝 흐르는 눈물을 이젠 닦아내지도 않고 힘껏 짜낸 듯한 목소리로 겨우 응. 이라는 대답만 돌려주었다. 이런 상냥함에 대답하기에는 그는 턱없이 부족하고 결여된 사람이었다. 지금은 대답 한마디로도 만족스러웠다. 그녀도 만족스러운 것 같았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곧이어 그녀가 입을 열었다.

“ 이제 정말로 괜찮을 거예요. 드디어 정확하게 세다씨가 버틸 수 있는 한계점이 어디인지 알아냈어요. 다음에 또… ”

‘다음’이라는 말을 꺼내기 주저하는 것 같았다. 그녀도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그럼에도 그녀는 미소지으며 다음 말을 꺼냈다.

“ 다음에 또 치료받을 땐 아프지 않을 거예요. ”

그녀는 다음에도 꼭 와야 해요! 라는 말도 덧붙였다. 세다는 많이 진정된 것인지 짧은 대답만 하고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평소의 그였다면 이딴 치료 다시는 안 받는다며 싸움을 일으킬 법도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 나름대로 미트라를 신뢰하게 된 걸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정말 다음 치료가 아프지 않을 거라고 했으니, 바보같이 또 믿는 거라던가. 어떨지는 자신만 알 것이다. 여기서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싫다면 죽어도 싫다고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녀석임은 확실했다.

 

 

치료를 시작하고서 몇 달이 지났다. 세다의 흰색 큰 흉터는 거의 사라져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이젠 스스럼없이 한 쪽 얼굴을 가리는 가면을 쓰지 않고 밖을 돌아다니게 되었다. 과거의 그보다 훨씬 가벼운 걸음걸이였다. 그녀가 진행했던 ‘치료’도 거짓말처럼 그 이후에는 토하거나 기절하거나 열이 나거나 아픈 적이 없었다. 오늘은 그녀가 마지막 치료라고 했던 날이었다. 그가 어쩐지 기분이 좋아 보였던 이유였다. 걷다가도 갑자기 헤헤, 하고 웃는다거나. 어젯밤에 찾아온 비가 만든 작은 물웅덩이 위에서 힘차게 발길질을 해본다던가. 아무 생각 없이 하는 그 행동 하나하나가 어린아이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당연하게도 마지막 치료는 이제껏 그래왔듯이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그는 자신이 멀쩡해지고서야 자신을 도와주던 치유사의 상태에 눈이 밟혔다.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자기 관리가 되지 않은 헝클어진 머릿결이라든지, 퀭해보이는 눈이라든지… 이 녀석도 엄청나게 고생했구나. 싶을 때 그녀가 말하기 시작했다.

“ 이걸 치료해도…… 세다씨의 이 쪽 눈은 보이지 않잖아요. ”

“ 그래? ”

여태까지 몰랐지만 딱히 상관 없는 말투로 즉답했다. 그녀는 언제쯤이면 제 말을 제대로 들으실거예요? 라며 투덜거렸다.

“ 그래서 제가 열심히 연구한 게 있는데…… 오른쪽 눈 만큼은 아니지만 왼쪽 눈을 보이게 만들어드리고 싶어요. 최근에 그걸 위해서 다른 분들과 많이 연구했어요. 세다씨를 위해서요…. ”

‘나’를 위해서라고? 세다는 사고가 멈췄다. 그녀가 뱉은 단어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고작 나 따위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한다고? 보통 그렇지 않잖아. 세다는 지금껏 자신이 쌓아온, 이제 손대는 것도 두려워질 만큼 너덜너덜해진 인간관계를 떠올렸다. 나한테 잘해주는 녀석은커녕 상종하지도 않으려는 녀석들뿐이었는데. 뭘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주는 거지? 세다는 뇌리에 자신이 그녀를 대한 태도가 스쳐 간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해하기 힘들었다. 자기만족인가? 남을 도와주면 기뻐하는 타입의 사람인가?

“ 왜? ”

“ 네? ”

“ 왜 나한테 그렇게까지 해주는데? ”

“ …… 세다씨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서요. ”

말도 안 돼.

이런 녀석이 진짜로 세상에 존재하기는 하는구나.

“ … 내가 행복하면 너한테 무슨 득이 되는데? ”

“ 제게 득이 되는 건 없지만…. 음, 기왕이면 행복하게 사는 걸 보는 게 좋지 않나요? ”

“ ……. ”

“ 세상은… 나쁜 것을 많이 보는 것 보다, 좋은 걸 누리고, 보고…. 느끼는 게 제일 좋은 거니까요~ ”

“ …그래. 네가 그렇다면……. ”

흉터만 없어져도 세상 살 만 하다고 느꼈는데. 갑자기 이렇게 될 줄은 누가 알았을까. 이 눈이 다시 보이게 되는 건, 이제는 없어진 흉터가 생긴 이후로 평생 생각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상상하는 걸로도 죄를 짓는 기분이 되는 일을 현실로 만들어준다니.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그리고 그들은 정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은 결말 같잖아. 내가 누릴 자격은 애초에 없다고.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르고 살고 있는지 너는 상상도 못 하겠지. 하지만….

하지만, 그걸로 나를 지옥의 구렁텅이에서 발 정도는 세상에 내디딜 수 있게 도와준 네가 그런 말을 하면 내가 어떻게 거절하겠냐고. 그냥 사실은 나의 행복이 아니라 자기만족이라고 말해. 이렇게까지 해야 네가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해. 그게 속이 편하다고.

“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할게……. ”

“ …… 네!! ”

그렇게 행복해 보이는 표정을 짓는구나.

세다가 타인의 표정을 유심히 보게 된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영원처럼 느껴지던 장기간의 치료는 이렇게 끝났다.

그로부터 며칠 후, 미트라는 세다에게 금박으로 된 단안경을 건넸다. 시야 보조기구예요. 그녀가 말했다. 또 어려운 말을 뒤에 잔뜩 말하는 바람에 무슨 이야기인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 정도는 미트라에게 예상 범위 안이었다.

“ …알겠죠? ”

“ 그러니까……. 뭐라고? ”

“ …… 네네. 완전히 같은 시야는 아닐 거예요. 처음엔 많이 어지러울 수도 있어요. 에테르안과 비슷하게 보이도록 하는 게 한계였어요. ”

“ 응. ”

“ 자주 착용해서 익숙해지는 게 좋아요. ”

“ 응. ”

왜인지 믿을 수 없어서 석연치 않은 대답으로 단안경을 받았다. 이게 현실인지 아니면 내가 또 빌어 처먹을 꿈속에 있는 건지…. 어쨌든 안쓸 수는 없으니 단안경을 착용했다.

윽. 어지러워. 낯선 감각에 생각 없이 단안경을 뺐다.

“ 익숙해져야 해요. ”

“ …… 싫은데. ”

그녀가 볼을 잔뜩 부풀리고선 노려본다. 아, 알겠어. 알았다고. 그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착용하고 그녀의 말대로 몇 걸음 움직여본다. 평소와 다른 시야 덕에 휘청거렸으나 금방 똑바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잘했어요! 실없어 보이는 칭찬이 조금 뒤에서 들려왔다. 새로운 시야는 원래 있던 오른쪽 눈의 시야에 더해져 특이한 것이 보였다. 칭찬 소리에 뒤돌아 그녀의 모습을 확인했을 때, 그녀 대신 여름 하늘 같은 푸른 빛이 둘러싸고 있는 듯한 느낌을 일순간 받았지만, 환각이라도 본 것처럼 눈을 깜빡이니 원래의 그녀 모습이 보였다.

“ 원래 이런 이상한게 보이는거야? ”

“ 에테르안이 원래 그런걸요. ”

이 새로운 시야에 익숙해지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미트라에게 분에 맞지 않는 선물을 받아 끼고선 집이라 부를 수 있는 곳에 돌아왔다. 몇 개월 만에 돌아온 곳은 여전히 크피르답게 흠잡을 곳 없이 깨끗했다. 그것과는 별개로 이 초코보 냄새는 늘 훅 들어오는구나.

“ 다녀왔어. ”

“ 어서 와. 이번엔 좀 늦었네. ”

오랫동안 집을 비우는 게 익숙했는지 둘은 가벼운 인사만 주고받았다. 크피르는 여느 때와 같이 작은 책을 읽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본 세다의 모습과 달랐는지 책에 있던 시선이 세다에게 한 번, 책에 다시 한번, 세다에게 한 번 더…. 그러더니 책을 덮고 일어나 세다에게 성큼 다가왔다.

“ 이 단안경은 뭐야? ”

그가 세다의 얼굴을 유심히 보기 위해서 한 손으로 양 볼을 잡아 자신을 보게 한다. 세다도 이런 일이 익숙한지 가만히 대답했다. 받았어. 무미건조한 표정으로─덕분에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종잡기 힘든─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흉터가 없어져서 보고 있는 걸까? 그런 자신의 생각이 맞기라도 한 듯, 크피르는 흉터가 있던 자리를 볼을 잡았던 손으로 어루만졌다.

“ … 흉터도 없어졌네. ”

추궁이라도 당하는 걸까 싶어 심장 박동이 빨리 뛰는 게 느껴졌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잘못한 일이 없지만 혼나는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했다. 시선을 오른쪽으로 굴리곤 잘하지도 못하는 변명거리를 빠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거짓말이 하나 생각날 때쯤, 세다 머리 위에 손이 올라와 쓰다듬기 시작했다.

“ …… 보기 좋아. ”

크피르는 웃는 게 서툴렀다. 영업용 웃음이 아닌, 지금 이런 웃음 말이다. 그런가. 좋은 일이구나. 세다는 기분 좋은 울렁거림이 생겼다. 자신이 가장 신경 쓰던 그가 단순하지만 좋다고 말해줘서일 것이다. 정말 마음에 든 것인지 한참을 그렇게 쓰다듬고는 다시 원래 앉아 있던 소파로 돌아가 읽던 책을 마저 읽으며 ‘밥해놨으니까 알아서 먹어.’라며 무심한 듯 챙겨주는 말을 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고기찜 요리였다.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몇 번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맛이었으니까.

옷을 그 자리에서 내던지듯 두고─크피르가 약간 인상을 찌푸린 것 같았지만─ 적당히 아무 옷으로 갈아입은 후에 그걸 먹었다. 늘 같은 맛.

“ … 나, 이거……. ”

“ 이거 좋아하는 것 같아. ”

이 집에 눌러앉아 살기 전, 끔찍했던 제국 생활을 할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어떤 것이 좋다고 표현해 본 적이 없던 세다의 입에서 ‘이게 좋아’ 라는 말은 처음이었다. 크피르는 읽던 책 문장의 다음을 읽을 수 없었다. 여전히 표정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지만 그의 꼬리가 천천히, 가볍게 좌우로 움직인 것만이 그의 기분이 ‘굉장히 좋다’ 라는 걸 알려주었다. 솔직히 세다도 이런 식의 말은 처음이라 약간은 부끄러웠다. 그래서인지 그 뒤로는 묵묵히 앞에 있는 고기찜을 먹어치웠다.

이제 가면이 필요 없어진 그는 가면의 무게와 반비례하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침대에 누웠다. 그리 고급 침대는 아니었지만, 이날만은 비싸고 좋은 침대에 누운 것처럼 푹신했다. 그 모든 게 어제 일처럼 떠올라 피곤함도 같이 찾아왔다. 나를 챙겨주는 동료, 따뜻한 집과 음식, 의지할 수 있는 애인. 늘 바라왔지만, 자신에게 맞지 않는 보상 같은 존재들이었다. 잘 때마다 괴롭히는 요마도 최근 들어서는 전투할 때를 제외하고 모습을 자주 보이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일들을 생각하다 바보처럼 풀어진 표정으로 꾸벅꾸벅 졸다 이내 잠이 든다. 혼자서 평온하게 잠을 청하는 것도 굉장히 오랜만인 것 같았다.

그는 이제 내일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아직 해결해야 할 일이 산더미만큼 있지만 말이다.